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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밥 대신 빵을 외치게 된 나라, 대한민국. 쌀을 찾는 이들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빵 소비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명의 연간 쌀 소비량(56.4kg)은 역대 최저치로, 30년 전의 절반 수준입니다. 1인당 하루에 밥 한 공기 반 정도만 먹는 셈입니다. 반대로 1인당 하루 빵 섭취량은 2012년 18.2g에서 2020년 19.4g으로 증가했습니다. ‘빵지순례’ ‘빵킷리스트’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로 빵 사랑이 대단합니다.
밥심 아닌 빵심이 더 익숙한 요즘, 베이커리 시장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커집니다. 이런 빵, 저런 빵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빵에 대한 기준은 갈수록 높아지는데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빵집 1등은 어디인가요? 오늘은 눈과 입이 즐거운 국내 베이커리 산업의 세계로 떠나봅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과 동네 빵집의 대결부터 우리나라 베이커리 시장의 미래까지 만나보겠습니다.
성심당은 어떻게 파리바게뜨를 이겼을까?
전국에 4개밖에 없는 성심당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심당에 가기 위해 새벽 2시부터 오픈런을 하고, 무더운 폭염에도 대기 줄이 끝없이 이어지는데요. 오직 대전에만 존재하는 성심당을 두고 대전을 먹여 살린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지난겨울 돌풍을 일으킨 딸기시루에 이어 올 상반기 내놓은 망고시루는 성심당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실적 어마어마하네
성심당의 어마어마한 인기는 실적으로도 나타납니다. 성심당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로쏘의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약 52% 증가한 1,243억 원이었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를 제외한 단일 빵집 브랜드 매출이 1,000억 원을 넘긴 건 사상 처음이었죠. 같은 기간 영업이익(315억 원) 역시 두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약 199억 원),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약 214억 원)보다 많은 수준입니다.
백지 수표 거절한 성심당?!
2014년, 성심당은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으로부터 백지 수표를 받았다고 합니다. 원하는 자리, 원하는 크기의 자리를 내주겠다며 원하는 조건을 적으라고 한 건데요. 하지만 성심당은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임영진 성심당 대표는 “굳이 서울에 갈 이유가 없다”라면서,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성심당의 본질을 지키겠다는 뜻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착하니 잘될 수밖에
성심당의 성공 비결은 착한 기업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먼저 가격이 착한데요. 프랜차이즈 업체를 비롯한 다른 빵집에 비해 확연히 싼 가격임에도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맛까지 훌륭해 빠르게 입소문을 탔습니다. 또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긍정적 이미지가 더해졌습니다. 성심당은 당일 생산 당일 소진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당일 판매되고 남은 빵을 취약계층에 모두 기부하는 등의 선행이 성심당에 대한 신뢰를 키웠습니다.
성심당, 남는 게 있긴 해?
작년 성심당의 영업이익률은 25.3%나 됩니다. 1.0%, 3.1%에 불과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인데요.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1,000원 빵을 팔고 10원과 30원의 이익을 가져갈 때, 성심당은 약 250원을 챙긴다는 뜻이죠. 성심당이 어떻게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단출한 살림살이도 신의 한 수
답은 효율적인 비용 관리입니다. 성심당은 4개의 지점이 모두 직영점으로, 직접 보유한 건물에 있는 소수의 매장만을 운영하는데요. 빵 공장에서 만든 빵이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바로 판매되는 구조입니다. 이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보다 판관비(판매비·관리비)가 훨씬 적죠. 작년 성심당의 판관비는 약 270억 원으로, 파리바게뜨(8,993억 원)와 뚜레쥬르(3,157억 원)에 비해 크게 낮았습니다. 특히 이미 탄탄한 인지도를 쌓은 덕분에 큰돈을 들여 광고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성심당의 비용 효율화에 한몫합니다.
대기업 게 섯거라!
성심당 외에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동네 빵집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대표적으로 군산의 이성당, 대구의 삼송빵집 등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부럽지 않은 존재감을 증명하는데요. 한국 최초의 빵집으로 알려진 이성당과 부산의 대표 베이커리인 옵스(OPS)는 영업이익률이 각각 13%, 11%로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습니다. 1957년부터 3대째 이어진 삼송빵집 역시 작년 매출(190억 원)과 영업이익(12억 원)이 전년보다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파리바게뜨-뚜레쥬르, 이대로 1위자리 내려놓나요?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표 빵집 하면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작년 말 기준, 파리바게뜨 가맹점은 3,881개, 뚜레쥬르 가맹점은 1,300여 개로 규모부터 압도적인데요.
K베이커리의 키플레이어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국내 베이커리 시장을 양분하는 양대 산맥입니다. 국내 베이커리 시장의 규모는 약 7조 5,705억 원(2022년 제과점업 전체 매출 기준)인데, 이 중 파리바게뜨의 운영사 파리크라상의 매출은 2조 원으로 약 4분의 1 수준입니다. 뚜레쥬르 운영사 CJ푸드빌의 매출은 6,000억 원이 넘죠. 전체 제과점업 매출에서 소상공인의 매출이 약 3조 2,121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의 매출 합계가 국내 베이커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빵 장사하는 법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은 가맹점에 밀가루, 설탕, 반죽 등 원재료와 완성빵 일부를 공급해 수익을 냅니다. 또 가맹점 제품 수익의 일부를 나눠 받기도 하죠. 하지만 이때 가맹 본부는 가맹점에 대한 판관비 때문에 가맹점의 영업이익보다 더 낮은 이익이 날 수밖에 없는데요. 통상 프랜차이즈 빵집 가맹점의 평균 수익률이 10% 안팎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파리바게뜨의 전체 가맹점 영업이익은 약 2,500억 원, 뚜레쥬르는 약 740억 원 규모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작년 두 곳의 본사 영업이익의 약 13배, 3배죠.
우린 글로벌이야
이들은 전 세계에 K베이커리를 알리며 해외 시장 진출에도 나섰습니다. 파리바게뜨는 2005년 중국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한 결과 올해 4월 기준 11개국에 563개의 매장이 있는데요. 뚜레쥬르 역시 2004년 미국 진출을 시작으로 캐나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몽골, 싱가포르 등 8개국에 400개 넘는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해외로 눈 돌린 진짜 이유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해외 진출에 열을 올리는 데는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판단과 신규 출점이 어렵다는 현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동네 중소 규모의 빵집을 보호하기 위한 상생 협약에 따라 가맹점 신설이 제한돼 왔는데요. 새로운 가맹점을 내려면 전년도 점포 수의 2% 이내여야 하고, 중소 빵집 인근 500m 내에서는 신규 매장 오픈과 재출점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여파로 2013년 3,220개였던 파리바게뜨의 가맹점 수는 2022년 말 기준 204개 늘어난 3,424개에 그쳤고, 뚜레쥬르 역시 9년간 늘어난 가맹점 수가 약 40개에 불과했죠. 이에 대기업 빵집은 해외 시장을 대안으로 삼았습니다.
진짜 파리에 간 파리바게뜨
파리바게뜨는 빵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식이 아닌 현지식 베이커리류로 승부를 봤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파리바게뜨의 해외 시장 공략 열쇠는 현지화에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바게뜨는 고품질의 원재료를 사용해 일반 빵집이 아닌 고급 빵집(브랑제리)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다양한 종류의 빵을 선보였죠. 미국에서도 베이글, 도넛 위주인 현지 베이커리에 비해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디저트 빵, 케이크 등을 내놓으며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메뉴 비중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셀프’ 선택 방식은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현지 문화에 부합하는 운영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파리바게뜨 미국 법인은 작년 상반기 처음으로 흑자를 냈습니다.
뚜레쥬르, 해외에선 1인자로?
뚜레쥬르 역시 다양한 종류의 제품과 체계화된 매장 운영 시스템으로 현지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국내 시장에선 출점 규제나 내수 성장의 한계 등으로 뚜레쥬르가 파리바게뜨를 따라잡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요. 해외 시장에선 얘기가 다릅니다. 작년 북미 시장에서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는 100호점을 오픈했고, 2030년까지 북미 매장 1천 개를 오픈하겠다는 동일한 목표를 내걸었죠. 뚜레쥬르는 베이커리와 커피까지 400여 종에 달하는 제품 수로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종합 베이커리라고 해도 종류가 100개 안팎이던 미국 시장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빵집이었죠. 수프, 샐러드, 샌드위치 등을 아우르는 빵 백화점 전략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실제 작년 미국 뚜레쥬르의 매출은 전년 대비 약 40%, 영업이익은 약 179%나 뛰었습니다.
베이커리 시장, 앞으로 더 커질까?
이젠 빵이 주식이다
늘어나는 빵 수요는 국내 베이커리 시장을 넓힙니다. 이젠 간식뿐 아니라 식사 대용으로도 빵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편의점, 카페 등 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드는 곳이 많아졌는데요.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2월 전국 유명 빵집이 입점한 스위트파크를 개장하고 눈에 띄는 매출 성장을 이뤘습니다. 오픈 직후 한 달 만에 디저트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1% 늘었죠. 올해 1분기 롯데백화점 식품관의 베이커리 매출도 30% 증가했습니다. 전국 5만 5,000개 규모의 편의점 베이커리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좀 힘들지도
이런 트렌드에 힘입어 차별화된 빵을 파는 전문 베이커리가 많아지면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 빵집 프랜차이즈들이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노티드, 런던베이글뮤지엄 등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이색적인 베이커리가 등장하고, 지역 기반의 동네 빵집이 배달 및 택배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이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규제 연장 결정까지
지난 6일 대기업 신규 출점 규제가 5년 연장된 것도 업계엔 악재입니다. 규제 협약에 참여한 대기업은 파리크라상, CJ푸드빌, 신세계푸드, 더본코리아, 이랜드이츠 5곳이었는데요. 중소 빵집과의 거리 제한이 기존 500m에서 400m로, 신규 출점 가능 점포 수가 전년도 점포 수의 2% 이내에서 5% 이내로 규제 내용이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입니다. 편의점, 카페, 대형마트, 이커머스 등 똑같이 빵을 파는 곳이 많아졌는데도 대기업 계열 베이커리만 규제하는 건 달라진 시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죠. 다른 프랜차이즈 업종과 달리 제과점업에만 출점 제한 규제를 두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빵값 더 오르면 곤란한데
한편, 훌쩍 오른 빵 가격은 빵 집기를 망설이게 하기도 합니다. 작년 빵 물가는 전체 물가상승률(3.6%)보다 3배 가까이 높은 9.55% 올랐고, 우리나라 빵은 전 세계에서 6번째로 비싼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는데요. 유독 우리나라에서 빵 가격이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빵이 주식인 유럽보다 빵 가격이 비싼 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빵의 원재료인 밀과 비정제 설탕을 대부분 수입하지만, 유럽은 오래 전부터 밀 재배에 적합한 환경 덕분에 빵 생산에 유리한 구조를 갖춰왔는데요.
또한 밀이나 설탕 말고도 우유, 버터, 생크림, 계란 같은 원재료 가격이 워낙 비싼 데다가, 인건비, 임대료 등 비용 상승 압박도 심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빵은 디저트류가 많기 때문에, 원가에서 부재료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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