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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죠. 그만큼 한국은 일본의 행보를 비슷하게 걸어왔습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 경쟁력을 통해 가파른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 출산율이 급감하고 빠르게 고령화가 이뤄진다는 점도 비슷한데요.

    부동산 시장을 두고도 이런 이야기가 들립니다. 90년대 일본 부동산 시장에 쌓였던 거품이 꺼진 뒤 줄곧 하락세를 보인 것처럼 서울 집값도 언젠가 거품이 꺼질 것이란 우려도 존재하는데요. 오늘은 일본 부동산 시장을 돌아보고, 이를 통해 한국 부동산 시장의 미래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무너진 부동산 불패 신화

     

    화려했던 80년대

     

    1980년대, 일본 경제는 최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세계 50대 기업 중 30개 넘는 곳이 일본 기업이었고, 소니, 파나소닉, 도요타, 혼다, 캐논 등 대기업들은 낮은 환율과 높은 품질을 바탕으로 어마어마한 수출 성과를 이뤄냈는데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역시 일본 최대 통신기업인 NTT였습니다.

     

    거품 낀 자산시장

     

    물론, 여기엔 시중에 풀린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과도하게 몰린 영향도 있었죠. 1985년, 미국이 낮은 엔화 가치를 무기로 엄청난 수출량을 자랑하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엔화 절상을 요구했습니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였는데요. 결국 일본은 환율을 달러당 250엔에서 100엔으로 조정했습니다. 엔화 가치가 갑자기 2.5배 오른 거죠. 이에 정부는 급하게 경기 부양에 나섰습니다. 1985년 5%였던 기준금리는 1987년엔 2.5%로 빠르게 내린 거죠. 이에 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풀렸고, 이 돈이 자산 시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부동산 가격도 폭등

     

    이때를 기점으로 부동산 시장에도 엄청난 거품이 형성됐습니다.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에 주택가격은 3배 이상 폭등했는데요. 도쿄 지역 땅값도 무섭게 치솟았죠. 1983년 대비 1998년 도쿄도 주택용 땅값은 2.5배, 상업용 땅값은 4배 가까이 불었습니다. 도쿄 땅을 전부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돌았죠.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나 가파르게 오르자, 투기 광풍이 불었는데요.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 가격이 올라있다는 이야기, 가정주부까지 대출 빚을 받아 땅을 사들였다는 소문이 파다했죠. 그야말로 ‘부동산 불패 신화’가 전 국민을 홀렸습니다.

     

    1980년 이후 일본 주택 가격 지수 ⓒ FRED

    땅값 상승과 대출 확대의 악순환

     

    은행들은 부동산 투자를 위해 자금을 끌어모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출 유치 경쟁에 나섰습니다. 이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200%에 육박하기도 했죠. 1억 원짜리 땅을 가진 사람이 총 2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나 시장에 돈이 풀리다 보니 땅값이 오르지 않은 지역을 찾기가 힘들었고, 사람들은 오른 땅값을 바탕으로 추가 대출을 받아 새로운 부동산 투기에 나섰습니다. 땅값 상승과 대출 규모 확대의 악순환이 시작된 거죠.

     

    하루아침에 날벼락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급하게 대책에 나섰습니다. 1989년 5월 2.5%였던 기준금리를 1년 만에 6.0%까지 올렸는데요. 이와 함께 1990년 3월, 부동산대출 총량규제를 도입해 부동산과 건설업 분야 대출을 막았습니다. 정부 정책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1989년 말 3만 8천P 선에 머물던 닛케이 지수는 1990년 4월 2만 9천P 선으로 폭락했고, 10월엔 한때 2만P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죠. 은행과 기업은 줄도산했고, 경제성장률은 0으로 수렴했습니다. 매년 무섭게 상승하던 부동산 가격도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는데요. 2014년 기준, 일본 부동산 가격은 1990년의 35%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부동산, 투자재에서 소비재로

     

    부동산 시장의 판이 바뀌다

     

    1990년 정점을 찍은 집값이 매년 하락세를 보이면서, 일본 사람들의 주택에 대한 인식이 180도 변했습니다. 더 이상 집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하락하는 소비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요. 새로 뽑은 자동차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고장 나면 새로 사야 하는 것처럼, 주택 역시 시간이 지나면 노후화돼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에 불과하다는 거죠.

     

    공급은 되레 늘었다

     

    반면, 정부는 버블 붕괴 이후에도 신규 주택을 꾸준히 공급해 왔습니다. 1980년대 136만 호였던 일본의 연평균 주택 공급은 1990년대엔 144만 호로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1992년 약 140만 호, 1996년 160만 호의 신규 주택을 공급했죠. 이러한 추세는 2000년대까지 이어져 2008년까지 매년 100만 호 넘는 주택이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이는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을 풀어 공공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린 영향이었습니다. 당장 시급한 경제 성장을 위해 집값이 떨어지는 걸 모른척했던 겁니다.

     

    집, 공짜로 드립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택을 공짜로 주거나 심지어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돈을 주고 이를 양도하는 믿기 힘든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주택이 잘 팔리지도 않는 데다가, 각종 세금에 관리 비용까지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돈을 주고서라도 빠르게 처분하려는 거죠. 실제로 일본에서는 빈집이 크게 늘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작년 10월, 일본 전국 빈집은 약 899만 호로 전체 주택의 13.8%에 달합니다.

     

     

    도쿄 집값은 ‘핫’ 핫 핫

     

    도쿄 집값은 오른다고

     

    그러나, 도쿄와 오사카 등 주요 대도시의 상황은 다릅니다. 2013년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집값이 최근 들어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2023년, 도쿄의 핵심 지역인 23개 구 주택 가격 평균치가 전년 대비 40% 오른 1억 1,483만 엔(약 10억 4천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1974년 이후 1억 엔을 돌파했는데요. 12평짜리 신축 맨션 가격은 15억 원을 웃도는 상황입니다. 올해 4월 기준, 도쿄와 오사카의 6개월 내 집값 상승률은 1.5%로 전 세계 주요 도시 15곳 가운데 가장 높았습니다.

     

    도쿄 23개구 신축 맨션 평균 가격 ⓒ 일본부동산경제연구소


    집값 상승의 주역, 타워 맨션

     

    가파르게 오르는 주택 가격의 중심엔 ‘타워 맨션’이 있습니다.이름만 들으면 감을 잡기 힘든데요. 사실 맨션은 우리나라의 아파트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일본에서 ‘아파트’는 2~3층짜리 작은 주거용 빌라를 의미하죠. 맨션 중에서도 20층 이상의 고층 건물을 타워 맨션이라고 하는데요. 도쿄에서도 땅값이 가장 비싼 미나토구나, 도쿄만의 화려한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오다이바 등 부촌에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고급 타워 맨션이 즐비해 있습니다. 이런 타워 맨션이 도쿄 집값 상승을 이끄는 것입니다.

     

    @pixabay

     

    일본, 한국의 미래일까?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일본 부동산 시장의 현재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서울 집값은 무섭게 오르는 데 반해, 지방에서는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한데요. 그렇다면 한국도 언젠가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 붕괴를 직면하게 되는 걸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 전문가들은 우선 한국의 경제 기반이 당시 일본보다 훨씬 탄탄하다고 지적합니다. 성공적인 IT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산업 환경에 적응하면서 첨단 산업이 전체 수출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아직 잘 나가고 있다는 거죠. 이에 부동산 시장도 조금 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겁니다.

    • 또 현재 서울 집값은 80년대 일본만큼 과대평가 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현재 서울의 평균 아파트 매매 가격은 직장인 1년 소득의 30배를 밑도는데요. 집값이 1인당 소득의 60배를 웃돌았던 과거 일본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죠.

    • 한국의 ‘전세 제도’가 집값 하락을 막아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택 구입 자금이 부족하더라도 임대인의 전세 자금을 통해 자금을 보충할 수 있는 만큼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이 외에도 과거 일본과 달리 현재 한국에서는 부동산 대출 시 각종 규제가 적용된다는 것도 차이점으로 꼽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 모두 심각한 저출생으로 인구 감소 추세에 놓인 만큼, 장기적으론 집값 하락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우토 마사아키 도쿄도시대 도시생활학부 교수는 2045년 도쿄권 전체 집값이 840조 원가량 증발할 것이라고 지적하는데요. 한국 역시 2040년부터 집값 장기 하락에 돌입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앞으로 저출생 현상이 심각해지면 이 시기는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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